1
나는 그를 ‘꽃 할머니’라고 불렀다. 처음 본 곳은 위태롭게 쌓인 매장용 쟁반을 정리하던 햄버거 가게였다. 꽃 할머니는 구겨진 휴지를 쥐고 쓰레기통 입구에 묻은 케첩을 닦았고 플라스틱 콜라 컵에 남은 얼음을 전용 배출구에 쏟은 다음 포갰다. 에어컨이 격렬하게 나왔지만 땀을 뻘뻘 흘렸다. 올라온 직원에게 알은체하며 제대로 치우지 않은 사람들을 욕했다. 직원은 어딘가 불편한 웃음을 보일 뿐 대꾸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둘을 피해 쟁반에 담긴 쓰레기를 털어 넣었다. 나는 쓰레기통 입구가 앞뒤로 흔들리는 만큼 꽃 할머니의 손이 떨리는 것을 오래 보았다.
꽃 할머니의 가게 앞에는 항상 악취가 진동했다. 오랫동안 꽃을 물에 담아둔 파란 통은 뒤집힌 채 굴렀고 하수구 구멍에는 썩은 꽃잎과 잘린 꽃대가 쌓여 있었다. 꽃 할머니는 이를 아는지 혹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가게 안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골목을 몇 바퀴 더 돌았을 때 가게 앞에는 웅덩이가 생겼고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밑창에서 넘실거리는 새까만 물에 양말이 젖지 않게 조심히 발을 옮겼다. 그때 꽃 할머니가 뒤돌았다. 비둘기를 안고 있었다. “비둘기?”라고 혼잣말하는 나를 힐끗 보았고 발목을 잡고 비둘기 발가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비둘기는 얌전히 고개만 까딱였다. 꽃 할머니의 손은 햄버거 가게에서 덜덜 떨리던 손이 아니었다. 섬세하고 단단한 손이었다. 지금 이 시간과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손이었다.
얼결에 인사한 나는 장사가 끝났는지 물었다. 새까만 물이 엄지발가락을 적셔왔다. “모든 장사가 끝났습니다. ……열대야다. 올해야말로 지독히 꽃 사는 사람이 적습니다.” 꽃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가볍게 목례한 뒤 발등까지 젖어 벌써 무거워지기 시작한 신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골목 끝에 있는 ‘젊음의 거리’는 여전히 밝았고 사람들은 시끄러웠다.
살아 있는 비둘기일 리 없다. 당연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돌았는데 꽃 할머니는 파란 통을 바로 세우고 있었고 전선에 비둘기 한 마리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비둘기가 꽃 할머니 손안에 있던 비둘기인지 신촌에 널리고 널린 비둘기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물어볼 기회도 놓쳤다. 그날이 꽃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었다. 가게는 유행하던 핫도그 가게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핫도그를 사 먹고 나무 막대를 꽃대처럼 들고 다닌 날. 꿈에서 나는 하차 벨 눌러도 절대 문이 열리지 않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종점이 되어서야 내렸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푯말로 “종말”이라 적혀 있었다. 사방에 꽃송이 날아다녔다.
다음 날부터 나는 서울 가는 무궁화에서 들은 ‘송’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2
분갈이 시기를 놓쳤던 ‘송’은 너무 많은 애도와 무관심을 견딘 탓에 흥건히 말라붙었다. 계절은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었다. 카페 칸의 좌석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송은 계단을 세 칸씩 내질렀다. 가볍게 먼지가 일었지만 그 자리 그대로 다시 내려앉았다. 내가 송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열차 칸을 잘 찾아 들어갔고 대구역에서는 기차를 놓친 승객이 발만 구르다 주저앉았다. 나는 엎드려 있던 송을 급히 깨웠는데 송의 이목구비가 늦장 없이 잘 착석해 있는 것이 난처했다. 삶은 자꾸만 지겨워졌다. 나는 송에게 초자연적인 존재와 끔찍했던 인간들을 만나 죽을 뻔했던 일에 대해 또 말해달라고 졸랐다. 그걸 다 빨아들이는 갯벌 같은 송의 삶에 대해서도. 나는 아침의 발걸음을 상기시켰다. 세 칸씩 내지르는 것을 모두가 봤다고. 비극에게 들키고 싶은 욕망이냐고.
삶에 봄이 있다면 송은 승객이 되지 못했다. 송은 덜덜 떨었지만 몇 개의 계절을 박탈당해도 견딜 수 있게 자랐다. 나는 삶도 열차도 일단 선로에 오르면 탈선하지 않으려 한다고, 최선을 다해 선로에서 벗어나더라도 촌각을 다투며 정상 운행을 열망해버린다고, 삶은 금단현상을 잘 견디는 골초라고, 그러니 이번 여행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은 직장을 옮기며 수입이 조금 늘었다. 근무도 조절할 수 있어 급히 병원에 모실 때는 안심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보다 더 빠르게 버거워진다고 말끝을 흐렸는데……. 나는 어머니가 삼키는 눈물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했다.
송은 입술을 떨며 말했다. “시인이네 시인.” 그리고 침묵.
“지망생.”
나는 어쩐지 내가 ‘마음에 들어져서’ 침묵.
송도 한때는 지망생이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송의 이목구비는 유적처럼 조용히 빛났다. 당시 서울에서는 제때 챙겨 먹은 적이 없었는데 가슴께가 늘 답답했었다. 송은 말했다. 부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던 날에는 낡고 부서진 벤치만 있는 공원에 앉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송은 말했다. 그날 이후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이 그치지 않는다. 송은 말했다. 잠시 나를 속이며 살았을 뿐이다. 송은 말했다.
마침맞게 좌석 주인이 나타났다. 이 모든 게 잘 짜인 연극 같다.
열차가 터널로 진입하게 송이 쏟아졌다.
“네가 나에게 ‘봄바람에도 통풍을 앓는 사람’이라고 했던 말 기억해? 나의 통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나도 자주 잊어버리는데, 시간이 갈수록 선명한 건 순수한 통증뿐인데, 왜 자꾸 몇 번 툭툭 건드려보고 파헤쳤다고 드는 거야? 풀풀 날리는 먼지 다시 그대로 껴안게 하는 거야?”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변기를 붙잡고 내가 송을 보며 떠올렸던 단어들을 쏟아내려고 한다. 헛구역질을 반복하면서 생각한다. ‘이런 지리멸렬한 인생은 도저히 지겨워지지가 않는구나. 도무지. 모든 것이 잘 짜여 있구나.’
열차의 마지막 역인 서울역에 도착했다. 송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찜질방은 코 고는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야 여기가 신촌인가? 역 앞 백화점에 불났다는데?”
돌아보았을 때 송은 옆에 없었다.
3
2016년 12월. 나는 신촌을 걸으며 그 찜질방을 찾아보려 했지만 나는 쪼그라들어 있었고 똑같은 인테리어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스타벅스에 파묻혔다. 나는 모레 있을 면접을 생각했다. 무사히 통과한다면 그다음 주에 있을 면접까지.
‘민’의 집에서 신세를 진 첫날, 비명 같은 숨을 뱉으며 깼다. 꿈에서는 점점 작아지는 나를 사람들이 차고 다녔다. 천장을 향해 한숨을 여러 겹 쌓고 있는데 멀리서 아침이 오려 했고 나는 좀 더 자야 한다는 생각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대로 잠에서 깼다. 민은 없었다. 밤새 세상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바람 없이 머물러 있는 찬 공기를 밀면서 “서울은 지붕에 눈이 쌓이는 도시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새하얀 무력감. 떼 타지 않은 무력감. 고요하게 지붕을 짓누르는 무력감. 나는 숨이 막혔다. “없는 사랑 없는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가며 말할 수 없는 감정” 같은 문장을 숨 막히도록 아름답게 여겼던 날들은 지나갔다. 그해 겨울에만 다섯 번째 펼쳐본 시집에서 나는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순식간에 불어닥친 찬바람은 나를 꼼짝 못 하게 가두었지만.
‘미’는 신촌에 가면 미분당에 가보라고 일러두었다. 나는 아직 열지 않은 가게 앞에서 미를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복했지만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나는 검은 무스탕에 쌓인 눈을 털었다.
우리는 새햐얀 제주도에 고립된 적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첫 발자국을 찍으며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구한 깨끗함이라는 데 들떴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앞에는 자동차 바퀴와 뒤엉켜 검게 변해버리는 눈이 있었다. 김 서린 안경을 낀 채 쌀국수를 먹는 동안 서로에게 새하얗던 마음이 검게 변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합격하면 서울에서 사는 거지?”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면접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나에게 미래가 놓여 있다는 것을 선뜻 믿지 못했다. 무스탕의 털이 자꾸 빠진다는 의미 없는 답장을 보내면서. 손끝으로 돌돌 만 털 뭉치를 주머니에 넣으며 “이렇게 미래를 보존해야지”라는 혼잣말을 잘도 해대면서. 미래는 너무 소란스럽고 이곳은 다른 사람의 식사를 방해해선 안 되는 조용한 가게. 나는 쌀국수를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최종 면접에 이십 분 늦게 들어온 대표는 내게 손금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나의 손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필기까지 했다. 수학교재를 팔아서 세운 회사였다. 그렇게 다시 쪼그라들었다. 무언가를 지망하는 일. 미래를 그려보는 마음.
나는 부산에 내려가지 않았다. 봄에는 떨어지는 벚꽃잎을 밟아댔다. 걸려 오는 전화들을 거칠게 끊어댔다. 나는 폐역이 되어갔다.
4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내게 밀려오는 사랑은 지옥뿐이었다. 눈앞에 천장이 들어차 있었다. 나는 2017년 여름을 중앙 제어 에어컨 구멍으로 구겨 넣는 중이었다. 작은 구멍을 노려보다가 짜증이 솟구치려 하면 그제야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찬 바람이 나왔다. 그마저도 미세했으므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잦았다.
나는 밤을 축이는 신촌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버스 정류장 가로등 아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를 보고 심야 버스가 남았는지 보러 왔다가 실망하는 사람. 지나치게 웃거나 우는 사람. 첫차를 기다리며 졸다가 화들짝 깨어 소지품을 확인하는 사람. 사랑한다고 했다가 모르겠다고 했다가 대뜸 욕을 하는 사람. 술에 취해 혼잣말 그치지 않는 사람까지 내 곁에 왔다가 떠났다.
그들은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숨죽인 나는 사람들의 소음이 거의 없는 새벽을 기다렸다. 빈 병이 굴러다니고 도처에 꽁초 널려 있는 새벽을. 토한 자리로 몰려드는 비둘기와 환경미화원이 나타날 때쯤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그제야 고시원으로 들어가 작은 침대로 쓰러졌다. 온몸에는 모기와 날벌레들. 내가 아주 썩은 것처럼 들러붙어 죽은 날벌레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낮과 무덤이자 악몽이 되어가는 한밤. 그 반복을 생의 동력으로 여긴 한여름이었다.
부산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방에 들어와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부산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방으로 들어오려는 걸 문고리 꽉 붙잡은 채 막는다.
부산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밖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숨을 참고 있다가 그대로 죽는다.
꿈이 바깥까지 이어지는 날에는 부산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아직도 틀어박혀 곪아 가는지 물었다.
나는 서울에서도 삶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아직은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며 나를 찢어발길 거냐고 말하지 못했다. 이것이 여름 동안 이어진 나를 향한 무더운 추도사였다.
5
매미 소리 절정을 맞은 골목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낮이 달군 아스팔트가 다 식은 뒤에도 나는 좀처럼 산책을 끝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시험 기간처럼 시를 쓰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다. 오랫동안 시와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은 가벼운 옷차림이 드러내는 나의 맨살 같은 맨 마음. 책이 쏟아지는 곧으로 향했다.
복숭아뼈가 보이는 연한 청바지를 입고 세 장에 만 원을 주고 샀던 흰 티를 돌려 입으며 맨발로 검은 블로퍼를 질질 끌었다. 천 원짜리 커피는 탄 맛이 지나치게 강했지만 매번 출판 학교까지 가는 길에서 모조리 마셔버렸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를 훨씬 다채롭게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들은 나를 파헤쳤다. 내게 묻은 흙먼지를 말끔히 털어주었다. 신촌의 새벽을 함께 전전하며 소설과 시에 대해 얘기했다.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세세하게 다루는 마음을 목격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또 무엇을 배웠나.
여름에는 여름의 일에만 투신하기. 여러 일을 처리하는 건 다른 계절에 맡기기. 여름에 하기로 한 일에만 골몰하며 정수리를 찍어 누르는 햇빛에 기꺼이 전소되기.
* 박지혜,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