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자 등이 따뜻해진다. 버드나무가 살랑이는 동안 사람들은 반려견과 산책하거나 달리거나 일찍 가게를 연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강가를 향해 걷는다. 햇빛을 머금고 흐르는 강물을 보았을 때 생각했다. ‘이제 그해 여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로워진 기분으로 조금 더 걷는다. 등에서 땀이 흐르고 더운 바람이 훅 끼치자 물비린내가 피비린내로 변한다. 그 순간 나는 포획된다. 실족한다. 올해도 찾아왔다. 그해 여름이. 회전목마에서 내리지 못하는 오전과 끝나지 않는 바이킹에 앉아 있는 오후와 제발 운전을 천천히 해달라고 택시 운전사에게 애걸하는 저녁을 지나 다시 벤치에 앉는 새벽. 멍한 새벽. 멍든 새벽. 반복된다. 쓰레기차가 동네를 한 바퀴씩 돌 때마다 그해 여름을 다시 살아본다. 오늘은 다섯 번을 살았으나……. 그해 여름에 폭발한 일과 팽창하는 감정과 사실과 슬픔은 여전히 뒤섞여 있다. 나는 분리배출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검은 비닐이다. 밤에는 수거되지 않고 낮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여름은 나를 어디까지 따라올까. 손 없는 날은 비쌌다. 귀신들이 함께 들어온다는 날을 골라 할인을 받았다. 이사 전날에는 밥솥을 미리 가져다두며 무탈하기를 바랐으나, 귀신들과 둘러앉아 밥 먹는 꿈을 꾸었다. 귀신처럼 들러붙은 과거에 쓸 수 있는 부적이 있는지, 새어 나가는 삶은 어떻게 단속해야 하는지, 이승의 정념은 그곳에서도 떨치기 어려운지 물었다. 그들은 나를 본 체도 않고 밥만 퍼먹었고 아침에는 그간 밥솥이 가리고 있던 벽지의 무늬를 오래 바라보았다. “새어 나가는 삶을 단속하는 데 실패한 자들이 귀신이 된다.” 나는 중얼거리며 마트로 향했다. 그간 즐겨 먹지 않던 재료들로 카트를 가득 채웠다. 포장 이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잔금을 치르고, 전입신고를 하고,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도 걸었다. 벼랑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이사는 벼락 같은 이별이다. 무사히 끝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살던 동네와 이별하는 마음을 품을 시간이 없고 무사히 끝난 뒤에는 미로 속에 남겨진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게들과 골목들. 이별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매일 이 미로로 돌아오는 나는 그리고 어느 날 미로가 아니게 된 것을 깨닫는 나는 숨을 크게 내쉰다. 동네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비로소 전에 살던 동네에도 놀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해 여름 이후 나는 한 명의 의사를 끈질기게 상상했다. 하얀 방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내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차가 여섯 바퀴를 굴렀습니다. 찰나에 나는, 나는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안간 의사가 묻는다. “오늘도 할 말은 더 없나요?” 의사가 나를 짓누르듯 일어서며 호통쳤다. “끈질기게 경청한 대가가 겨우 이겁니까!?” 나의 상상보다 키가 컸던 의사는 허리를 활처럼 휘어 내게 말했다. “겨우 이거냐고 물었습니다!” “대가는… 대가는… 내가 당신을 만들어낸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대답이 아니며 물론 대가도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창문으로 향했다. 떨어지면 깬다. 의사는 등 뒤에서 소리쳤다. “아직도! 여전히!” 창문에 다리 하나 걸치고 돌아보았을 때, 의사는 내게 앉으라고 손짓했으나 나는 뛰어내렸다. “어디에 있든 너를 따라다닐 거야!” 어두운 천장에서 말이 쏟아졌다. 부릅뜬 눈으로 나는 그 말을 다 받았다. 이것이 내가 그해 여름을 독해하는 방식이었다. 자동차가 비탈을 여섯 바퀴 구른 새벽이 지나자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았다. 나는 병원 현관 앞에 한참을 서서 굳건하게 떠 있는 여름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름에 죽으면 그다음 날 풍경이 꼭 이럴 것 같았다. 머리를 털자 깨진 유리 조각 몇 개가 떨어졌다. 하지만 세상에는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공업사와 캠핑장을 거쳐 공항에 가는 내내 세상은 피 비린내를 풍기는 나를 피해 다녔다. 어른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딱 한 번 일어난 일이라고 했지만, 무한한 시간 속에서도 반드시 한 번은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은 물러나지 않았다. 계절이 변했는데도. 해가 바뀌었는데도. 매년 7월 마지막 주마다 모른 척 전화해 안부를 물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우리는 그해 여름에 대해 대체로 침묵했다. 마주하기 무서워 다른 친구들을 통했다.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것 같아서, 이미 들은 것 같아서. “나는 너를 증오해.” 루는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향한 증오를 키웠다. 하지만 듣지 않아 안도하지 않았나? 그것이 더욱 역겹지 않았나? 라면은 사두고 부숴 먹기만 하는 여름이었다. 유리잔 유난히 많이 깨뜨리는 여름이었다. 어지럼증이 심해졌으나 달리기 멈출 수 없는 여름이었다. 기어코 벤치에 앉아 끈적한 팔로 얼굴을 감싸쥐며 울었던 여름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잠들지 못하는 여름이었다. 나는 펄펄 끓었다. 증발해버리면 좋았을 테지만……. 사실 결코 증발될 일 없었다. 그리고 이사처럼. 벼락처럼. 그해 여름이 끝났다. 이제는 포즈 취하기 좋은 불행. 나는 두 팔을 벌렸다. 필요할 때만 감정적이 되면서, 나의 무기력에는 사연이 있음을 연기하면서, 같잖게 살았다. 그해 여름을 동기 삼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또 추했나. 작은 문학상에서 상을 받은 날 나는 루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그날 이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미안하다.” 하지만 나의 글은 유년에 대한 반짝이는 글이었다. 우리가 겪은 그날과 루가 그날을 어떻게 반추하며 살았는지와 내가 어떻게 여름을 견뎠는지와 운전했던 우가 짊어져야 했던 수많은 뒤처리와 나의 글은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내게만 좋은 방식으로 매듭지었다. 나는 그럴 수 있다는 오만으로. “아직도! 아직도!” 새벽마다 검은 천장에서 말이 쏟아진다. 내게는 더는 떨어질 창문이 없는데. 아니, 있긴 있는데. 뒤집어진 차에서 조수석에 있던 내가 먼저 기어 나오고, 핸들을 꽉 쥐고 있던 우가 기어 나오고 곧이어 뒷자리에서 뒤엉킨 안전벨트를 풀지 못한 루가 도와 달라고 외쳤을 때 나는 뒤돌았으나 무서웠다. 루는 혼자 기어 나왔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여섯 바퀴……. 나는 그 순간에도 다람쥐통을 생각했고, ‘나는 살았다’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 생각으로 루를 데리러 가기 망설였다. “여기 앉아서 다시 차분하게 시작해보세요.” 사람 좋은 표정으로 돌아온 의사가 말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소리쳤다. 의사와 내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잉이 끝나면 그냥 배가 고팠다. 오랫동안 그해 여름을 글로 써보려고 했다. 어쩌다 글이 되는 것 같으면 서둘러 폐기했다. 완성했다는 감각은 수치스러웠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건 소화를 한 것 같은 기분, 그러니까 어떤 사건은 완수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그날을 배회하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귀신이 되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여름을 비추며 살았다. 8년이 흐르고 루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사고 후 루는 거의 운전대를 잡지 않았었다. 그날처럼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언젠가 우리 셋이 다시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루는 옅게 웃었고, 우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알았다. 호수를 끼고 드라이브 하는 내내 그때 마치지 못한 여행을 했다. 여름이었다. 내가 여름에 죽으면 그다음 날이 꼭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