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같은 카페로 향했다. 버뮤다팬츠에 목이 긴 양말과 장화를 신고, 흰색 무지 반팔 티와 품이 넓은 하늘색 옥스퍼드 셔츠를 허리춤에 묶었다. 같은 원두를 같은 추출 방식으로 주문하고 같은 자리에 앉았다.
노력한 만큼 혹은 가진 재능만큼 날아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연작시를 썼다. 투명해지는 기분으로. 떠오르는 마음으로. 그래서 끝나지 않는 장마는 곤란했다. 거울이 되어버린 창에는 준의 얼굴이 떠 있었다.
오늘은 ‘12미터’라 불리는 사람이 ‘5미터’, ‘3미터’, ‘50센티미터’를 조롱할 차례였다. 신발을 마주 털어 떨어지는 흙먼지에 속수무책인 그들을 내려다보며 조소하는 데까지 거침없이 썼다. 메아리로 들려오는 항의를 받은 ‘12미터’는 되레 자신은 발을 어디서 털어야 하느냐고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나는 멸시가 이토록 간단하다는 사실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조용한 준은 그러나 끈질기게 나를 보고 있었다. 잔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던 얼음 조각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사각거렸다.
나는 아침마다 준의 얼굴을 보며 양치했다. 준의 얼굴을 보며 씻었다. 준은 나를 멸시했다. 작게 신음하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준의 말과 표정과 행동 속에서 나를 경멸하는 증거들만 수집했다. 나를 맴돌던 분노는 여름 땡볕의 격렬함을 다 이겨 먹을 듯이 굴었다. 장마가 시작되자 기어코 나는 분출했다. 창에 들러붙은 수천 개의 빗방울은 수천 개의 준의 얼굴이 되었다. 언제나 묘하게 준은 나보다 위에 있었다.
각자의 감정을 정돈하고 차분히 대화하려고 했을 때 우리가 보았던 건 상처를 주고받은 얼굴이었다. 대화가 헛도는 만큼 상처는 덧붙었다. 나는 긴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끔한 얼굴로, 멋쩍은 미소로, 어제까지의 모든 것은 다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빗물이 창을 타고 흐르는 동안 준은 다시 화가 난 표정이 되었고.......
지금 준은 멀지 않은 사무실에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가 커피를 마시자고 해볼까.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한숨 쉬며 밀어두었다. 시간은 준과 나를 젖게 했다. 무거워지게 했다. 미래는 불투명한 창이 되었다. 화나고 상처받은 얼굴로 준과 나는 끝났다.
*
사진 속에는 8년 전의 햇빛이 강물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날 섬진강에서 나는 한쪽 눈을 찌푸렸지만 강줄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줄곧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렸다. 얼마 안 가 자전거 튜브가 터졌다. 그날만 세 번째였다. 이제 남은 패치도 없었다. 준과 나는 섬진강 자전거 길의 마지막 인증센터를 앞두고 있었고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함께 낙동강, 한강, 북한강, 금강, 영산강을 달렸던 우리의 마지막 여행에서 걱정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후텁지근한 맞바람도 상쾌했다. 조금씩 굵어지는 빗방울이 귓가를 때렷지만 우리는 위한 박수갈채 같았다.
서로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으나 우리 사이에는 겹겹이 쳐진 커튼이 있었고 이를 걷어버린 여행이었다. 전날 저녁에 예상 시간보다 구례에 늦게 도착한 우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문을 닫기 직전의 가게를 겨우 찾았고 전자레인지 조리가 되는 음식들을 급히 담았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는 마당이 딸린 한옥이었다. 큰 평상에 앉아 빔프로젝터로 상영 중인 〈백 투 더 퓨처〉를 보았다. 내년은 그 영화에서 나오는 미래였다.
준이 화성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 건 그때였다. 나는 그런 미래가 와도 지구에서만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하지는 않았다. 지구인이 인간으로서 내가 다다를 수 있는 막다른 길이라고.
그때 시간은 체력이 넘치는 우리를 따라잡지 못했다.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도 끝끝내 만나 서로 풍경을 나누었다. 분명히 나누었는데....... 행성만큼 멀어진 준과 나는 끝났다. 분명 끝났다.
*
클라우드 앱의 알림 설정을 해제하고 휴대전화를 껐다. 창밖에서 세상은 여전히 쏟아졌고 준은 여전히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또 여전히 약간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준이 짊어지고 있던 압박감을 덜어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준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준의 부담감이 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날, 나는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이것이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지 영원히 만나지 못할 갈림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
섬진강에서 튜브가 터졌던 자전거는 오랫동안 본가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집을 떠날 때까지, 끝내 그 자전거를 버릴 때까지, 바람 가득한 튜브로 교체되지 못했다. 강의 시작과 끝에서 자전거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찍었던 사진은 사라져버렸다. 준과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끝났따. 자신도 몰랐던 방향으로 날아가기 이것이 우리가 만든 미래다.
*
준과 내가 함께 통과했던 장마를 다시 데려온다. 몇 번이고 데려와 다시 시작하면 내일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리는 독서실이었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동안 읽고 쓰는 일만 하고 싶다고 부모에게 말했고, 나를 절반은 자랑스럽게 절반은 불안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을 잊으려고 애썼다. 준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독서실의 에어컨은 흐르는 땀을 식혀주긴 했으나 애초에 땀이 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대부분 피워댔던 전자담배 연기는 부패가 시작되는 과일 향으로 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미세한 두통을 견디며 시를 썼고 준은 모의고사를 풀었다.
어떤 날은 독서실이 불구덩이 같았다. 나는 시간이 결국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거라고 믿었다. 독서실의 열기와 우리가 품은 여름과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불확실성까지. 그쯤 나는 읽고 쓰는 일이 지나가는 취미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준은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불안함을 걷어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은 것과 죽어가는 것을 잘 솎아내고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희미해졌던 날에도 기다렸다. 여름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돈이 다 떨어진 내가 좀 더 갈 수 있게 해준 것도 준이었다. 준은 내게 돈을 빌려주며 당장 생활비를 버는 것보다 독서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확신했다. 우리가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면, 빛나는 쪽으로 돌진하는 나방처럼 모조리 소진된다고 해도 함께 있기만 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친구끼리 일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끝장나기 직전에 나는 준에게 월급을 받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쓸모없어졌고 걸림돌이 되었다. 준은 내게 자주 화를 냈고 나는 상상 속에서만 화를 냈다. 안팎에서 준과 나는 끝났다.
*
해소된 감정은 하나도 없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어서 나는 여전히 들끓고 있다. 바다는 한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가장 뜨겁고 한겨울이 아니라 봄에 가장 차갑다. 이번에도 내게 필요한 것은 빌어먹을 시간인 것이다.
노력한 만큼, 재능만큼 날아오를 수 있다면 늘 꼭대기에 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준이 살아오면서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불행을 어떻게 통과해냈는지 지켜보았다. 그래서 준이 이번에는 정말로 어렵다고 하소연할 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준이 경제적 성공의 목전에 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단번에 잘되고 싶어서 제안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날카로웠지만 비겁한 건 나였다. 우리의 울분은 똑같이 교환될 수 없었다. 준의 돈. 준의 시간. 준의 노력. 모두 준의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 화장실 거울은 나의 얼굴로 뒤덮였다. 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왜 도망갔는지, 왜 친구를 버렸는지, 왜 처음부터 끝까지 어리석은 결정만 내렸는지 물었다. 집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나. 나에게서 도망가려는 나.
빤히 보이는 감정을 과장하며 통화하는 준에게 티 난다고 말하며 웃었던 날, 준은 상대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다고 말했었다. 그런 몸짓도 곁들였다. 준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어렵게 걸었던 통화 끝에 나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왜 격렬히 싸워보지도 않았을까. 하늘에서는 다신 없을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데. 그때 우리는 왜 허심탄회해지지 못했을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비가 그치려고 하는데.
준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딸이라고 했던가……. 이름도 들었었는데……. 이제 내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준과 나는 끝났다.
*
비가 그쳤다. 창밖에서 사람들은 우산을 하나둘 접었다. 지금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화장실을 다녀왔고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짧게 통화했는데 다시 비가 세차게 내린다. 많은 것이 가파르게 변하고 있지만 빗물은 한 방울도 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우리가 함께 통과한 장마와 무더위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자전거길. 그리고 여전히 불타고 있을 것 같은 독서실을 카페에 두고 나온다. 내가 매일 그 카페에 다니던 시절과 함께 준과 나는 끝났다.
*
그 여름 내내 썼던 시를 모두 지웠다. 준의 세계에서 박탈되는 중임을 온몸으로 느꼈던 여름도 지나갔다. 시간의 성실함으로 준과 나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