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을 찾아다녔다. 창궐한 봉쇄와 혐오가 없는.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걸어서 올랐다. 그 끝에 공원이 있었다. 한바탕 흘린 땀을 식히며 나는 새벽의 공원을 천천히 산책할 생각이었다. 며칠 전 공원 한가운데에 누워 있던 고양이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람이 점령한 낮의 공원은 그러나 낮과 밤의 차이로 중앙을 차지하는 종(種)이 바뀌었다. 공원의 새벽, 나는 물구나무선 기분으로 뒤엎고 싶다는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날들이라 생각했다. 무엇을 뒤엎고 싶은지 잘 몰랐기에 더욱 어려웠다. 어쩌면 엎질러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원에서 나를 기다린 건 쌓여 있는 유리 조각이었다. 나는 갓돌을 넘지 못하고 옆에 있는 벤치에 어정쩡하게 앉았다. 유리 조각은 가로등 아래에서 빛으로 산란하고 있었다. 질 나쁜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것일까. 공원 입구에서 인기척이 들린 건 그때였다. 한 남자가 재바른 발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무릎에 걸리는 비닐 점퍼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그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어 보였다. 나는 그가 이 일의 전말을 알고 있으며 해결책도 갖고 있을 거라 믿었다. 믿게 하는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급정거하는 자동차처럼 갓돌 앞에 멈췄다. 나와 유리 조각을 번갈아 보더니 방향을 홱 틀었다. 나는 그의 등에 대고 물었다.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그는 말했다. “그쪽 아니에요?” “네?” “맞네. 절대 다가오지 마세요!”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허리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눕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몸이 떨렸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지금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제 알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해 휴대전화로 기사를 살펴보았지만 접촉 사고, 사기, 살인, 폭염, 확진자 동선뿐이었다. 초록의 공원에서 피 냄새를 기다리는 맹수 같은 유리 조각들이 모여 있는 일. 그러나 아름다운 빛이 태어나고 있는 일. 이런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둘 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었구나.’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뿐이었다.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하기 위한 산책이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워졌다.
점심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반찬들은 뒤엉켜 있었고 그것이 그 여름의 나였다. 나는 온갖 존재와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매번 혼자였다고 생각했으나 한 번도 혼자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비밀의 화원’은 점점 더 요원해졌다. 19세기 세계사를 다룬 원고 속에서는 매일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확립되지 않은 위생 관념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오르내렸고 테마주 광고 문자는 늘 때맞춰 도착했다. “숨을 못 쉬겠다”라는 말. 시대와 너무 가깝고 가벼운 말. 가벼워서 끔찍한 말이 곳곳에서 창궐했다. 나는 침묵했지만……. 확진자와 사망자는 숫자가 되었고 다음 페이지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잔인하게 죽지 않으면 왠지 김이 빠졌다. 나는 참담했다. 그러나 남몰래 참담해 했다. 내가 혐오하던 혐오가 “비로소!”라고 말하며 나를 껴안았다. 혐오의 땀 냄새 속에서, 이 계절 내가 가진 비밀의 정체는 끝 모를 수치심이었다. 베란다 식물들은 여름을 먹어치웠지만 나는 쪼그라들었다.
몸을 씻은 지 얼마 안 된 오리들이 돌계단에 앉아 날개를 말렸다. 노인이 끄는 유아차에 탄 강아지는 느릿느릿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은 걸었고 앉았고 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통과해 달리는 일로만 몸속에 쌓인 해소 불능의 감정을 말릴 수 있었다. 건너뛰기와 뒤로가기 버튼이 없는. ‘좋아요’와 ‘싫어요’로 빠르게 번지는 혐오가 없는. 피부에 닿는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게 닿는 후텁지근한 바람은 문고리였다. 열어젖히면 ‘비밀의 화원’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혐오를 혐오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나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름은 반전되지 않았다. 무기력은 웃자랐다. 나는 여름을 버려버리고 싶었다.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는 날이 나의 퇴사일이었다. 19세기 세계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죽었지만 더는 사람을 죽게 놔두지 않게 하기 위해 기관이 설립되었다. 법이 제정되었다. 사람들의 인식 또한 변했다. 원고 밖에서도 사람이 죽고 숫자는 조정되었지만 다행히 나는 숫자에만 골몰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 이 역시 오늘날을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다가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준에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함께 속한 옛 친구 무리와 그만 만나고 싶었다. 준은 그들보다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내 감정의 공증인이 되겠다고 했지만 어떤 새벽에는 모두 나의 잘못 같았다. 무럭무럭 자라지 못한 내가 그들에게 선사할 산소가 없어서는 아닐지. 오히려 그들의 머리를 누르고 한 모금이라도 더 마셔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닐지. 하지만 나는 스코어보드 같은 세상에 돈과 시간을 걸며 미쳐 있는 옛 친구들에게 지쳤다. 그리고 그들이 숨 쉬듯 내뱉는 혐오 표현에는 더더욱.
반환점을 돌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했다. 찾아다닌 ‘비밀의 화원’에서 나는 다시 연대하는 마음을 깊게 품었다. 그리고 계속 달렸다. 짙어지는 초록과 땀으로 젖은 머리칼, 두피에 작렬하는 햇빛을 느끼면서. 나란히 서는 순간들을 쌓아갔다. 이것이 이 여름을 잘 살고 싶다는 동기였다. 머리 위로 오리가 날아올랐다. 몇 달 전에는 나의 손바닥보다 작았던 오리들이었다. |